보약, 꼭 환절기에 먹어야 하나요?
보약, 꼭 환절기에 먹어야 하나요?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이 질문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보약은 환절기에 먹어야 한다면서요?" "지금 먹어야 하나요, 아니면 좀 더 있다가 먹을까요?"
몇 년째 같은 질문을 받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지금 어떤 게 제일 불편하세요?"
그러면 대부분 잠깐 당황하십니다. 시기를 물었는데 몸 상태를 물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순서입니다. 계절은 기준이 아닙니다. 기준은 지금 그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입니다.
'환절기 보약'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이 말이 근거 없이 생긴 건 아닙니다.
예전에는 계절이 곧 생활이었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논밭에서 몸을 쓰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을 났습니다. 일 년 중 몸이 가장 많이 소모되는 시기와 회복이 필요한 시기가 계절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절기에 맞춰 몸을 보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여름에 에어컨 아래에서 일하고, 겨울에 난방된 실내에서 지냅니다.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고 밤낮이 바뀐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5월에 완전히 소진되고, 어떤 분은 1월에 가장 무너집니다.
계절이 몸의 리듬을 대변하지 못하게 됐는데, 계절에 맞춰 약을 먹는 습관만 남은 겁니다.
그렇다고 계절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환절기에 감기나 비염이 늘고, 여름 끝에 체력 저하를 호소하시는 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건 '이 시기에 몸이 흔들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지, '이 시기에 모두가 보약을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피로가 아닙니다
"기운이 없어요"라는 말은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번 다릅니다.
| 어떤 피로인가 | 함께 나타나는 것 | |
|---|---|---|
| 기(氣)가 부족한 피로 | 말하기도 귀찮고 숨이 얕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친다, 땀이 쉽게 난다 | |
| 혈(血)이 부족한 피로 | 어지럽고 눈이 침침하다, 얼굴빛이 창백하다, 잠은 자는데 개운하지 않다 | |
| 소화기에서 오는 피로 | 먹고 나면 더 무겁다, 배가 잘 더부룩하다, 대변이 고르지 않다 | |
| 열이 뜬 피로 | 오후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손발은 뜨거운데 개운치 않다, 입이 마른다 | |
| 순환이 막힌 피로 | 몸이 무겁고 잘 붓는다, 아침에 특히 힘들다 | |
| 긴장에서 오는 피로 |
|
특히 자주 어긋나는 조합이 있습니다. 소화기가 약해서 온 피로에 진하게 보하는 약을 쓰면 더 힘들어집니다. 못 받아들이는 몸에 더 넣는 셈이라, 속이 더부룩해지고 "한약이 안 맞는다"는 인상만 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보약 상담에서 어디가 부족한지보다 지금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인지를 먼저 봅니다.
저희가 보약을 권해드리지 않는 경우
한약을 짓는 곳에서 안 짓는 경우를 적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적겠습니다. 어떤 경우에 안 하는지를 말할 수 없는 곳은 어떤 경우에 하는지도 정해두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지금 감염이나 급성 염증이 진행 중일 때 감기를 앓는 중이거나 열이 있으실 때는 보하는 처방을 쓰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채우는 약이 아니라 몰아내는 약입니다. 급성 증상이 정리된 뒤에 시작합니다.
둘. 피로의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피로는 여러 질환의 초기 신호이기도 합니다.
- 갑상선 기능 이상
- 빈혈
- 당뇨나 혈당 조절 문제
- 우울이나 불안
이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저희는 필요한 검사를 먼저 권해드립니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보약만 드시면 잠깐 나아졌다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확인이 늦어집니다. 그게 더 큰 손해입니다.
셋. 복용 중인 약을 확인하지 못했을 때 혈액이 굳는 것을 막는 약, 면역억제제, 정신과 약물 등을 드시는 경우 함께 검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드시는 것을 다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영양제도 포함입니다.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진다던데요"
보약 상담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입니다. 이것도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약도 간을 거칩니다. 부담이 전혀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약이 간을 거치고, 간을 거치는 것은 간에 일을 시킵니다.
다만 실제 수치를 보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17년 한국한의학연구원 주도로 진행된 국가단위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 한약 복용으로 인한 약인성 간손상 발생률은 0.6%로 조사되었습니다.〔1〕 그리고 확인된 사례들은 복용 종료 후 모두 자연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또 다른 국내 전향적 연구에서는 한약만 복용한 환자 57명에서 간 기능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고, 양약을 함께 복용한 256명 중 6명에서 이상이 관찰되었습니다.〔2〕
중요한 것은 이 통계들이 '한의사가 진단 후 처방한 한약'을 본 자료라는 점입니다. 흔히 인용되는 간손상 통계에는 시장에서 사서 직접 달인 약재, 성분 표기가 불분명한 즙과 환, 수입 건강식품이 같은 항목으로 묶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과 용량 기준이 있는 처방과, 아무나 사서 먹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합니다. 간 수치가 걱정되시거나 이전에 이상이 있으셨다면, 최근 검진 결과를 확인한 뒤에 시작합니다. 자료가 없으시면 어디서 무엇을 확인하시면 되는지 안내드립니다. "괜찮을 겁니다"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녹용, 공진단, 경옥고는 다른 건가요
자주 받는 질문이라 짧게 정리해 드립니다.
이 셋은 서로 대체재가 아닙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 녹용을 넣은 한약 —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춘 처방에 녹용을 더한 것입니다. 처방 자체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 공진단 — 정해진 구성의 환제입니다. 처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것을 드시는 방식입니다
- 경옥고 — 역시 정해진 구성의 고제입니다
"어느 게 제일 좋아요?"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지금 상태에 무엇이 맞는지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셋 중 어느 것도 안 맞는 시기가 있습니다. 위에 적은 다섯 가지 경우가 그렇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 것
정원한의원은 처방 전에 이 세 가지를 먼저 안내드립니다.
하나. 예상 복용 기간. 며칠분인지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 경과를 다시 볼 것인지까지 말씀드립니다.
둘. 예상 비용. 상담을 마친 뒤 결정하시도록 합니다. 진행 여부를 그 자리에서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셋. 어떤 반응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신호가 오면 연락하셔야 하는지.
막연한 상태로 시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저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무엇을 왜 드시는지 아는 상태에서 드셔야, 몸의 변화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지금 이 몸이 채우면 좋아지는 상태인가, 아니면 먼저 정리해야 하는 상태인가."
정리가 먼저면 보약을 미룹니다. 그날 매출은 줄지만, 엉뚱한 순서로 시작한 처방은 결국 서로에게 남는 게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환절기라서 왔어요"라고 하신 분께 "올해 언제가 제일 힘드셨어요?"라고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한참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사실은… 7월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럼 그때 오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보약 먹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셔서 넘기신 겁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는 시점과 달력이 알려주는 시점은 다릅니다. 힘들 때 오시면 됩니다. 그게 3월이든 8월이든 상관없습니다.
진료 안내
- 정원한의원 오산 | 경기도 오산시 성호대로 74
- 365일 진료 · 평일 오후 8시까지 / 주말·공휴일 오후 3시까지
- 예약 및 문의: 031-831-8620
상담 오실 때 최근 1년 이내 건강검진 결과지와 복용 중인 약·영양제 목록을 함께 가져와 주세요. 그 두 가지만 있어도 판단이 훨씬 정확해집니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출처
〔1〕 한국한의학연구원 주도 국가단위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2017). — 한약 복용으로 인한 약인성 간손상 발생률 0.6%, 복용 종료 후 전례 자연 회복. 관련 논의는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제9차 심포지엄 발표 내용 및 한의신문 보도(2019) 참조
〔2〕 Jeung TY, et al. A prospective study on the safety of herbal medicines, used alone or with conventional medicines.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12;143(3):884-888. — 한약 단독 복용군 57명에서 간 기능 이상 미관찰, 양약 병용군 256명 중 6명에서 간 기능 이상 관찰
본 글은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연구 결과는 해당 연구 대상자들의 평균적 결과이며 개인의 치료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처방 가능 여부와 내용은 개인의 체질 및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한의사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